▒▒▒▒▒  난 잡초같은 놈이다.
세상 어디에 두어도 끈질기게 살아남을 아이.
관심가지지 않고 걱정하지 않아도 알아서 잘 크는.. 그런 놈.
나 조차 날 걱정하지 않아...
다만 관심을 겁내하지... 그러기에 난 뭔가를 바라지 않아...
그리고 또 바라지 않고 싶어... 깊숙히 인정..
잡초는 그렇게 크는 거거든...

그런데 말이다...
잡초도 결국엔 땅이 있었고 물이 있었고
볕이 있었고 바람이 있었던 것...
이제 그게 보인다.




▒▒▒▒▒  "너무 잘해주지 마요.
그러면 상대는 꼭 그 만큼 마음이 물러나더라구요."
영화 와니와 준하에서 나오는 대사이다.
절대공감하며 받아들인 대사인데...
이런 정신상태를 전재로 감정놀음을 하긴 죽도록 싫지만
이상하게 거의 모든 인간에게 본능적이라 할만큼 소유되고 있는
헤게모니는 이런 식의 왔다갔다 밀고 당기는 감정놀음을
주고 받는다. 이건 참으로 성숙치 못한 사랑인것 같다.

내게 다가오는 호의와 사랑에 감사하며 받아들이는 것.
그게 성숙한 인간의 자세인 것이다.
상대의 날 향한 감정 지분이 크다고 느낄 때,
내안에 곰팡이처럼 피어나는 구속감이라든지, 거부감, 기피증,
두려움등등의 감정. 그로인해 마음이 닫치거나 물러남...
그리고 또 다른 곳으로 향하는 시선...
악..... 정말 나는 바보처럼 살았다....  
심하게는 속물처럼 말이다...




▒▒▒▒▒  누군가가 마음속에 담겨진채로 출렁대는 상태.
늘 그런 상태를 유지하고 살아가야 하는것이 인간이 아닌가?
누군가가 늘 마음에 있어야 우린.. 살아갈 수 있다.
아니 우리는 아니라고 부정한다면 적어도 나만은 그런 상태가
유지되어야 하며 또 유지되어 왔기에 지금껏 연명하여 왔음을 깨닫는다.

이는 본능과도 같아서... 먹고 자고 누고.. 하는 그런 것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래서 난 또 누군가를 마음에 담았다가 또 이내 다른 누군가로 인해
그 누구를 부어내고 다른 누구를 다시 담고..
그렇게 출렁대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감정의 향신료는 다음 문제..
상대가 알건 모르건간에 말이다... 그렇게 연습한다...



▒▒▒▒▒  정신지체아의 자식을 둔 어머니가 중병에 걸려 많이 아프다.
하지만 자식은 자기 자신만알뿐 어머니의 아픔을, 어머니앞에 드리워진
그늘과 그림자를 인식하지 못한다. 어머니는 그게 슬프다.

아들은 어머니에게 잘 하겠다고 건강하라고 하지만.. 그게 진심일까?
그의 머릿속에는 어머니를 향한 사랑과 배려의 마음이 있는 것일까?
있다면 그 진심의 무게는 얼마인가?

가끔 내가 이야기 듣고 싶은 사람에게서 어떤 말을 들을 때 그사람이 말한
한마디 한마디를 되뇌면서 그 무게감을 느껴본다. 얼마나 진심을 실어서
한 말일까... 하고 말이다. 하지만 난 이내 안다..
그건 정신지체아가 어머니에게 하듯 그런 습관적인 말들이었다는 것을..
그래서 그 어머니의 아픔을 일부분 충분히 이해하고 그녀의 슬픔을 공유한다.
그녀가 눈물을 흘리고 나도 눈을 훔친다.

감정을 온전히 전달하지도.. 느끼지도 못하는 정신지체아들은 진정 불행한 것 같다.
그와 연관된 사람들도 물론이고...




▒▒▒▒▒  사람이란 때가 있는 법이라 적정한 때가 되면
안 들리던 것도 듣게 되고 안 보이던 것도 보이게 되는 것...
그리고 무르익을 그런 때가 되면 저절로 만날 사람은
만나게 된다는 것이 나의 해석이다.
이게 옳다 그르다 할 수도 없는 것이겠지만 지금 생각은
그리고 앞으로 몇년간은 이런 생각을 가지고 살 것 같다.

언제까지인지 모르는 명줄을 가지고 살면서 그런 때를 무작정
기다려야 함은 때론 나를 초조하게 한다. 하지만 기다릴 줄 알면서
적절하게 스며드는 절묘함의 행복한 쇼크를 느끼며 살아야 하는 게
인생인 듯 싶다. 발버둥 친다한들 안 들리는 것이 들리는 것도
아니고 안 보이는 것이 보여지는 것도 아니니 말이다.
또한 보이지 않는 자 앞에서 내가 보여지지도 않을 것이고
또 들리지 않는 자 앞에서 나의 말이 들려지지도 않으니....

평소 그냥 흘려들었던 말들이 의미가 되어 들려오고
구석에 진열되어 있던 음악중 하나가 어느 순간에 의미가 되어 들려오고,
또 평소 보지 않았던 책을 우연히 열었을때 그 때 그속에서 발견된
한 구절, 한구절이 공감이 되어 의미가 되버리듯..
이렇게 모든 것은 내 주위에서 때를 기다리며 존재하고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눈에 들어오지 않던 사람도 때가 되어 한 순간에 이르르면
어느 순간 눈에 담기고 마음에 담기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  그래.. 난 자연스런 만남이 좋아.. 그속에서 운명적인 만남이
일어났으면 해.. 자연스럽다는 건 가랑비에 옷젖듯이 스며드는 그런 만남을
이야기 하는거야.. 나에게 가장 약한 부분이 이 시간이란 부분이거든...
눈앞에서 보여지는 그 사람과 나 사이의 흐른 시간이 깊어지고
젖은 가슴이 흥건할수록 나의 가슴은 통제불능이 되어 버리지...
의도된 만남이나 의도하고 싶은 만남은 종국엔 후회와 낭비만 있을뿐...




▒▒▒▒▒  20%의 호감이 80%의 사랑을 이끌어 낼까?
파레토의 법칙에 따라 20대 80의 수치로 나의 사랑을
적용시켜 봤을 때... 내가 느끼는 20%의 호감이
두근거리는 사랑의 감정의 80%를 만드는 건 아닌지...
사랑을 느끼게 하는 수많은 요소중에 말이다.

난 그런 것 같다. 일단 말투와 인상에 가장 큰 영향을 받는다.
말투와 인상에 그사람의 모든것이 표현된다는 믿음!
이렇게 20의 호감만 보여지면 그 후로는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80의 사랑의 감정이 싹트게 되는 것!

사실 내가 말투와 인상에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건 불과 몇년 사이밖에 안 된다.
(나의 사랑의 감정에 대해 연구하다가 발견했다.)
그러니깐 이렇게 특정한 일부분의 영향으로 인해
사랑의 감정이 성장되는 것이다.

상처와 고통으로 땅속깊이 자리잡았던
나의 사랑의 생장점이 반응하여 고개를 쳐들고
꽃을 피게 하는 그 영양분은 결코 많은 것을 요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운명이니 특별함이니 인연이니 하는 수식어는
80에 해당되는 단어이고 그 전제되는 베이스요소는
단 두가지!!




▒▒▒▒▒  대화는 서로를 유도한다.
가령 내가 "아~, 정말 심심하다..."라고 했을 때,
"왜?". "내가 재밌는 얘기해줄까?", "나도 심심해"
"뭐가 심심하냐?", ".......", "잠시 바람이나 쐐자!",
"후훗..", "이 사이트에 알아?", "빨리 여자가 생기든가 해야지..."

등의 수많은 예제 답중에 하나가
상대방에 반응되어 들려온다.
그럼 난 또 다시 여러 답중의 하나를
취사선택해 말을 하고...
그리고 또 대답을 듣고...

여기서 재밌는 건,
이런 대화가 오감으로 우리는 서로 상대와 얼마나
소통되어지고 호감이 가고 맘에 상처가 되고 자극이 되고
흥미가 생기고 하는 등의 느낌으로 무의식적 끌림 혹은
거부감등의 결론이 생기게 되고
또, 그로인해 또다른 반응 -그러니깐
딴청을 한다거나, 무시한다거나, 대화가 짧아진다거나
동공이 커진다거나 진지해 진다거나- 등으로
유도된다는 것이다.
(물론 대화라는 건 단어들의 조합뿐 아니라
엑센트, 말투, 제스츄어등등이 포함된다.
환경과 컨디션이 배경이 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대화를 하면 할 수록
내가 나쁜 사람이 되어가는 것 같은 사람이 있고
또 어떤 사람은 선해져 가는 것 같은 사람이 있다.
뭔가를 하나씩 배우고 얻어가는 것 같은 사람이 있고
잃는 것 같고 허하고 때론 가슴이 막혀지는 것 같은
사람도 있다. 이런 결과는 상대로 하여금 유도된 결과이다.
내가 결과를 얻었다면 상대도 뭔가를 느끼고 있을것이다.

그렇게 대화는 서로를 유도하고 있는 것이다.  
사소한 것 조차도 하나로 혹은 반대방향으로....
아니면 중구난방으로...  

반대방향이 아닌 한도내에서 나의 인간관계는
유도되고 지속되어진다.




▒▒▒▒▒  내가 세상에서 가장 두려워 하는 것이 있다.
바로 '믿음이 깨어지는 것....' 그것만큼 나를 중태에 빠지게 하는 건 없다.
내가 믿는 그것이 옳은 것들이기를 소망한다.




▒▒▒▒▒  사람들을 웃기고 나의 모습 중 극히 일부가 그들에게
보여지고 그들은 나를 알아간다. 사람을 안다는 것이 이렇게 간단한
과정은 아닐것인데... 사람은 알아가는 것만으로도 평생이라고 생각한다.
그만큼 우리네 인간은 유연한 존재이므로... 어쩔땐 나 조차도
날 모르는 정서불안의 정신상태를 맞이하기도 하지 않던가...

사회생활을 하면서 만나는 사람들을 보면 평소에 그냥 친하게만
지냈던 사람이었는데 새삼 놀라운 정신세계를 발견하게도 되고
때론 조용히 눈에 띄지 않다가 그 사람이 발하는 빛을 보고 놀라기도 한다.
존경하던 사람에게서 어느 순간 엄청난 실망을 하게도 되고
안 어울릴 것 같은 사람에게서 뭔가 공통된 세계를 찾게 되기도 하고
싫어 하던 사람에게서 어떤 존경스러운 면을 발견하게도 된다.

이런 경험들을 보면 결코 사람을 규정지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든다.
또한 알게 된 기간을 가지고 그 사람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말할 수도
없는 것 같다. 사람은 변하는 감정의 동물이므로 정확하게
그 사람을 안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것도 같다.

내 주위를 스치듯이 살아가는 사람들..
그들에게서 참 배울 것들이 많다는 걸 깨닫는다.
사람이 재산이라고...

사람을 참 많이 가리는 성격인 나는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그게 쉽지가 않다. 그게 내 그릇인가 보다라는 한계도 느낀다.
내가 더 크고 성장하기 위해서는 사람들을 많이 알고 수용하고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데... 늘 그렇게 생각은 하는데도 잘 안된다.

아무튼 나나 사람들이 나를 상대를 잘 알고 있다고
오만을 부리지 않았으면 한다.  
추측도 웃기다... 그저 그냥 열린 가슴으로

바람맞듯 사람을 스며들이며 스쳐보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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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는 아무 때나 막무가내로 날지 않는다.
나비는 날기 위해서는 몸이 뜨거워져야 한다.
30도 이상의 체온을 유지해야 비상이 가능하다.
30도는 대상에 대한 사랑의 온도이다.
모든 비상하는 자는 다른 무엇을 사랑하는 자이다.
가슴에 사랑이 없으면,
아무리 큰 날개를 가졌다 해도
흙바닥을 벌벌 길 수 밖에 없는 것이다.
- 전경린 "나비"中